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데르 6세 (문단 편집) === 젊은 시절 === [[1431년]]생으로, 스페인의 대귀족 [[보르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해에는 [[잔 다르크]]가 화형당해 죽었고, 대 튀르크 전쟁의 유명한 전사였던 [[블라드 가시공]]이 태어났다.] 같은 가문의 구성원인 [[교황]] [[갈리스토 3세]]의 조카인 탓에 20대 중반에 이미 [[추기경]]이 되었고, 2년 뒤에는 발렌시아 [[주교]]가 되었다. 그 후 [[갈리스토 3세]], [[비오 2세]], [[바오로 2세]], [[식스토 4세]], [[인노첸시오 8세]] 등을 섬기는데, 이 과정에서 성직을 팔아넘기면서 막대한 부를 쌓고 권력자들을 만나게 된다. 젊었을 때는 [[성직자]]임에도 여러 여자들을 후리고 다녀 인정한 자식만 8명이다. 그중 3명은 끝내 [[어머니]]가 누구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창작물에서 간혹 다루듯이 그의 인정을 받은 자식이나 그의 인정을 받지 못해 사생아가 된 자식들도 꽤 많이 있을 거란 떡밥이 있다. 다만 알렉산데르 6세의 경우는 조금 지나치긴 했지만, 당시 여자를 거느리는 [[추기경]]은 상당히 많았다.[* 당장 알렉산데르 6세의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율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훗날의 교황 [[율리오 2세]])도, 펠리체라는 딸을 낳았다.] 1492년 [[인노첸시오 8세]]가 사망하자 [[교황]] 후보에는 올랐으나, [[스페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이탈리아인]] 추기경들로부터 견제를 받아 미래가 불투명해졌는데, 추기경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교황에 선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인지는 아직까지 논란 중이다. 피렌체 대사의 기록에 따르면 로드리고(알렉산데르 6세)는 초반부터 투표에서 우위에 있었고 스페인 출신으로 무시당했던 것은 맞지만, 그의 유능함은 인정받고 있었다. 또한 돈으로 표를 사기에는 로드리고의 예산을 초과할 뿐더러, 돈으로 해결이 될 문제였다면 줄리아노가 이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있다. 덧붙이자면 뇌물은 당시의 관례 아닌 관례였는지라, 성직자로서 할 짓이 아닌 건 맞지만 알렉산데르 6세만 뇌물을 썼던 건 아니기도 하다.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도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자금 지원을 받았으므로, 오히려, 비교적 열세였던 알렉산데르 6세만 비난당하는 것은 공정치 못한 처사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